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너 자신을 알라."라는 어록을 남긴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를 풍미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철학을 논하던 그 시대에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소크라테스
고대 그리스 철학자
기원전 470년 경부터 기원전 399년 5월 4일
플라톤의 기록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석공소를 운영하는 석공이자 조각가였던 아버지와 산파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석공 기술을 배우며 철학, 기하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다. 40세 전에 세 번에 걸쳐 전쟁에 중장보병으로 전투에 직접 참여했으며, 기원전 406년에는 1년간 500명 공회의 일원이 되어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기원전 469년에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으며, 기원전 399년에 71세의 나이로 '신성 모독죄'와 '젊은 세대들을 타락시킨 죄'로 기소당하고, 투표 결과 40표를 얻어 기원전 399년에 71세의 나이로 사약을 마시고 사형당했다.
상대방에게 계속 질문을 하여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산파술'로 유명하다. 그는 아테네에서 계속 산파술을 시전하고 다닌 끝에, 정말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과,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가 본인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산파술이 '해법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며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는 현대에 이르러 정신과 상담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는 그의 말이 아니고 당시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져 있던 문구였는데 이를 소크라테스가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던 말이어서 제자들에게도 강조했던 말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없다. 그에 대한 기록은 모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해진 이야기 들이다. 그가 했다고 전해지는 수많은 어록들 중에 몇 가지 내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봤다. 기원전 400년 경의 그리스에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내뱉었던 말들이 지금 현대에 얼마나 적용이 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이 쓰이는지 알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겠다.
- 책을 열심히 읽어라. 그러면 상대방이 오랜 세월에 걸쳐 터득한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얻을 수 있다.
- 지혜는 부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가난을 더욱 부드럽게 한다.
- 친구와 적은 있어야 한다. 친구는 충고를, 적은 경고를 해 준다
- 행복을 자기 자신 이외의 것에서 발견하려고 바라는 사람은 그릇된 사람이다.
- 어려서 겸손해져라, 젊어서 온화해져라. 장년에 공정해져라, 늙어서는 신중해져라.
-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
- 어쨌든 결혼을 하여라. 양처(良妻)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악처(惡妻)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선인은 살기 위해서 먹고 마시는 반면 악인은 먹고 마시기 위해서 산다.
- 악은 인간이 선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 내가 보이고 싶은 대로 행동하라.
- 지금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여건이 좋아져도 절대 만족할 수 없다.
- 인생은 질문 덩어리이고, 멍청이는 해답 덩어리이다.
- 이별의 시간이 왔다. 우린 각자의 길을 간다. 나는 죽고 너는 산다. 어느 것이 더 좋은가는 신만이 안다.
기원전 4세기경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철학을 논하던 그리스 철학자의 모습이 낯설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땠을까?
고조선
기원전 10세기 ~ 기원전 3세기 한반도 일대에 철기 문화가 시작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 시기는 기원전 2333년으로 전해진다.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이고, '단군왕검'의 설화를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바람, 구름, 비의 신을 데리고 내려와 지금의 백두산에 이르러 세상을 다스리는데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여 찾아왔다.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마늘과 쑥을 주며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100일을 지내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호랑이는 이를 참지 못하고 동굴을 뛰어나왔고, 곰은 100일간 동굴에 머물러 마침내 젊은 여인 '웅녀'가 되었다. 환웅은 이 웅녀와 결혼해 자식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단군이다. 단군이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정했는데 이를 '조선'이라 불렀다.
단군 이야기에 등장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그 지역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온 이방인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고, 곰과 호랑이의 전설은 당시 강한 권력을 가진 두 부족이 있었으나 결국 곰을 상징하는 부족이 권력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왕검'이라는 단어에서 '단군'은 제사장을, '왕검'이라는 단어는 군사적 지배자를 뜻하는 말이니 그 당시 단군왕검은 절대적 통치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군왕검'의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의 바탕 위에 세워졌는데 옛 '고조선'의 영역에서 발견된 칼날이 뾰족하고 중간 부분이 불룩한 비파형 동검과 탁자 모양의 고인돌이 모두 청동기 유물이다.
지난 포스팅에 나온 '팔조금법'을 만들어 성문법을 가지고 통치했으며, 이 '팔조금법'을 통해 당시에 고조선은 고조선 사회가 생명 중시, 사유 재산 존재, 농경 사회, 계급의 존재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4세기경 고조선은 이웃인 연나라와 대립하고 당시에 중국인들이 교만하고 잔인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아직 민주주의는 없었다. 그리고 당시 유명한 위인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소크라테스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썩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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